[RemembranSOCCER 1] 90년대 대한민국의 정통 스트라이커 황선홍
우리는 항상 추억에 기대 살고 있습니다. 축구도 마찬가지에요. 현재의 선수들이 화려한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지만
과거 우리에겐 별이었던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라운드에서는 볼 수 없는 선수들이 별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 RemembranSOCCER은 '추억'을 뜻하는 Remembrance와 '축구'를 뜻하는 soccer의 합성어 입니다.
* 국가, 리그에 상관없이 현재 은퇴한 선수를 대상으로 리뷰합니다.
* 90년대 대한민국의 정통 스트라이커 황선홍 *
# Memory
- 첫 글로 황선홍 감독을 택할만큼 내가 축구를 좋아하게 만들어 준 선수. 내가 한창 축구를 보기 시작한때가 98프랑스
월드컵 전후 였는데, 경주에 살아서 그런지 포항을 연고지로 한 포항스틸러스를 좋아했고, 그 당시 그 클럽에서
뛰었던 황선홍 선수를 보고 축구를 좋아하게 되었다. 참고로 첫번째로 맞춘 유니폼도 등번호가 18번이었고 학창시절
에는 정통 스트라이커 포지션에 뛰기를 원했다. (물론 이동국 선수를 보고나서 20번으로 갈아탄 건 비밀)
지금은 감독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지만 아직까지 내 마음속에 '황새'로 기억된 황선홍 감독의 선수시절
히스토리를 알아보자
# Profile
- 1968년 7월 14일 충청남도 예산군 출생
- 국적 : 대한민국
- 183cm / 80kg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별명 : 황새(긴 다리와 성이 '황'씨 인 것과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창시절 약점이던 피지컬을 만회하기위해 물배를
채워 뒤뚱뒤뚱 걷는 모습에 착안)
# Synopsis
- 한국 축구 시대별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는 선수(이회택 - 차범근 - 최순호 - 황선홍 - 김도훈 - 최용수 - 이동국 ..... )
- 골결정력과 넓은 활동 반경을 활용한 오프더볼이 뛰어나며, 넓은 시야로 연계플레이가 뛰어나 개인 전술의 폭이 넓음
- 15년간 부상 시기를 제외하고 항상 대표팀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
- 특히 35세의 나이에 2002년 한일월드컵에 출전하여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끔
- 우리나라 3번째 센추리 클럽 가입(103경기 50골)
※ 참고로 14명의 센추리 클럽 가입자중 공격수는 차범근, 황선홍, 이동국 3명뿐
- 비운의 공격수 : 선수시절 5번의 큰수술을 치름(전방 십자인대가 2번 파열 → 군면제)
- 한국 스포츠 역사상 한 경기로 가장 많은 욕을 먹음(94년 미국 월드컵 볼리비아전)
- 일본 킬러 : 뛰었던 한일전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음
- 대한민국 최초 전대륙 상대 A매치 득점 성공
(아시아 : 일본 / 북미 : 미국 / 유럽 : 노르웨이 / 남미 : 콜롬비아 / 아프리카 : 카메룬 / 오세아니아 : 호주)
- K리그 8게임 연속 득점
# Club
년도 | 국가 | 클럽 | 기록 | 특기사항 |
1991년 | 독일 | 바이어04 레버쿠젠(아마추어팀) | 19경기 6골 | - K리그 드래프트 제도 거부로 독일 진출 |
1992년 | 독일 | 부퍼탈 SV 보루시아(2부리그) | 9경기 3골 | - 십자인대파열로 한국으로 귀국 |
1993년 ~ 1998년 | 한국 | 포항 스틸러스 | 52경기 26골 | - K리그 역사에 남을 기록(1vs8트레이드) : 해외 드래프트 결과로 황선홍을 지목할 권리를 가지고 있던 완산 푸마 의 황선홍과 포항제철 아톰즈 선수 8명을 바꾸는 초유의 트레이드 진행 - 95년 8경기 연속골 / 11골로 득점 3위 - 97, 98년 AFC챔스 2연패 |
1998년 ~ 1999년 | 일본 | 세레소 오사카 | 36경기 30골 | - 99년 한국인 최초 외국리그 득점왕 |
2000년 ~ 2002년 | 한국 | 수원삼성 블루윙즈 | - | |
2000년 ~ 2002년 | 일본 | 가시와 레이솔(임대) | 34경기 12골 | - 당시 유상철, 홍명보와 같이뜀 |
2002년 | 한국 | 전남드래곤즈 | - | - 2003년 2월 9일 공식 은퇴 |
# National Team
년도 | 대회 | 장소 | 팀 기록 | 개인 기록 | 특기사항 |
1988년 | AFC 아시안컵 | 카타르 도하 | 준우승 | 2골 | |
1990년 | 이탈리아 월드컵 | 이탈리아 | 조별예선탈락 | - | - 벨기에전(0:2 패배) - 스페인전(1-3 패배) - 우루과이전(0-1 패배) |
1994년 | 미국 월드컵 | 미국 | 조별예선탈락 | 1골 | - 스페인전(2:2 무승부) - 볼리비아전(0:0 무승부) - 독일전(3-2 패배) |
1994년 |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 일본 히로시마 | 4위 | 11골 | - 네팔전에서 8골 기록 |
1996년 | AFC 아시안컵 | 아랍에미리트 | 8강 탈락 | 3골 | - 최악의 부상을 당함 |
1998년 | 프랑스 월드컵 | 프랑스 | 조별예선탈락 | - | - 월드컵 전 중국과의 친선경기 에서 살인태클로 당한 부상 때문에 출전하지 못함 |
2002년 | 한일 월드컵 | 한국 | 4위 | 1골 | - 폴란드전 인생골 작렬 |
1) 1988 AFC 카타르 아시안컵
- 무명 대학선수였던 황선홍 데뷔
- 당시 이회택감독이 황선홍 발탁 후, 언론과 여론에 시달렸으나 데뷔전인 일본전에서 황선홍이 1골 1어시를
기록하여 논란을 잠재움
- 한국은 조별리그 전승으로 통과, 4강에서는 연장전까지 간 중국에 2:1 승리로 결승 진출
- 결승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만나 0:0 무승부를 기록하여 승부차기까지 갔으나 승부차기에서 3:4로 패하여 준우승
2) 1990 이탈리아 월드컵
- 조별예선에서 벨기에 0-1패, 스페인 1-3패, 우루과이 0-1패하여 3전 전패의 최악의 성적을 남김
- 당시엔 대표팀이 질경우 거의 모든 비난을 공격수가 받음. 그래서 투톱인 황선홍과 김주성이 많은 비난을 받았음
3) 1994 미국 월드컵
- 도하의 기적(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 마지막 순간에 일본과 한국의 순위가 뒤바뀌면서 한국이 월드컵
진출하고 일본이 떨어짐)으로 3회 연속 월드컵 진출에 성공
- 스페인과의 조별예선 1차전 황선홍은 골키퍼와의 1:1기회를 놓쳤으나 0-2로 뒤지던 후반 40분 홍명보, 45분 서정원
의 동점골로 2:2가 되면서 논란을 불식
- 조의 약체로 평가된 볼리비아전이 황선홍 축구 인생 가장 최악의 경기로 꼽힘
- 여러 번의 결정적인 찬스에서 날린 슛팅이 계속 허공으로 향했으며, 이 경기로 인해 '똥볼', '홈런볼'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님(결국 0:0으로 무승부)
- 이 경기로인해 홍명보의 회고하길 '자다가도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했음
- 독일전에서 3:0으로 끌려가던 후반에 황선홍의 월드컵 사상 첫 골 기록, 이후 홍명보의 회심의 중거리슛팅이
꽂히면서 3:2로 패배하였으나 볼리비아전 논란을 잠식시키지 못함
4)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 붙박이 공격수로 활약
- 조별 예선 네팔전에서는 혼자 8골을 기록하여 한국이 11-0으로 승리하였음
- 8강에서 일본을 만나 아직도 회자되는 명승부를 펼침. 미우라에게 선제골을 먹히지만 후반전 유상철이 동점골, 이후
황선홍이 역전 헤딩골을 넣었으나, 일본이 다시 중거리슛으로 동점골을 만들었으며, 후반 종료 직전 황선홍이 직접
페널티킥을 얻어 직접 성공시키면서 3-2 승리
- 4강에서 만난 우즈베키스탄전에서는 결정적 기회들을 날림으로써 0-1패배
5) 1996 AFC 아랍에미리트 아시안컵
- 당시 K리그에서 반시즌만에 2년 연속 두자릿수 득점 기록하여 대표팀 승선
- UAE전에서 1골, 인도네시아전에서 2골을 기록하여 승승장구
- 조별 예선 3차전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서 후반 막판 수비수의 살인태클에 오른쪽 발목 인대 파열로 시즌아웃
- 한국은 8강에 진출하였으나 이란전에서 알리 다에이의 4골(?)을 허용하여 6-2 패배로 대회 종료
6) 1998 프랑스 월드컵
- 1997년 5월 발목부상의 후유증으로 오른쪽 십자인대 파열
(당시 황선홍은 리그, 국대, 올림픽 와일드카드까지 한해에만 60경기 이상을 뛰어 혹사당했으며,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했음)
- 월드컵을 위해 재활에 전념했으며 98년 3월 일본전에 복귀하여 그 유명한 바이시클 킥을 기록하여 한일전 우승
- 월드컵 전, 황선홍과 최용수 투톱은 피파랭킹 3위였던 체코와의 친선전에서 각각 한골씩 넣어 2:2 무승부를 기록
하는등 사람들의 기대감을 모았으며, 차범근 감독은 '황선홍은 현재 대표팀 전력의 50%를 차지한다'고 평했음
- 프랑스로 떠나기 직전 중국과의 친선경기에서 중국 골키퍼의 태클로 부상당했으며 무릎이 박살남
- 중국과의 친선경기로 인해 당시 축구협회의 기획력이 도마에 오름. 프랑스로 떠나기 전날 야간에 경기를 잡았으며,
우리보다 약체인 중국과의 경기를 잡은 부분은 아직까지 이해할 수 없음. 심지어 월드컵 2번째 경기 후, 차범근
감독을 경질하면서 최악의 운영을 보여줌
- 부상 당했지만 출전을 위해 프랑스까지 건너갔으며, 한 경기라도 뛰기위해 진통제를 여섯번이나 맞았으나 결국
경기에 나서지 못함
7) 2002년 한일 월드컵
- 프랑스월드컵이 끝나고 선수 생활이 꺼져가는듯 했으나, 도망치듯 넘어간 일본 J리그 세레소 오사카에서 99년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며, 다시 마지막 축구인생이 펼쳐짐
- J리그 활약을 토대로 35살의 나이로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뽑힘.
- 첫번째 경기인 폴란드전에서 인생골 작렬! 전반25분 이을용이 올린 낮은 크로스를 다이렉트로 차서 선취골을
뽑아냄(당시 폴란드 골키퍼는 리버풀의 주전 골키퍼인 두덱)
- 황선홍이 넣은 결승골에 힘입어 한국은 월드컵 역사상 첫 승을 이뤄냈으며, 황선홍 개인적으로는 모든 논란을
잠재우고 명예회복에 성공함
- 두번째 경기인 미국전에서는 전반 중반에 미국 선수와의 헤딩 경합중 충돌하여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으나
붕대를 두르고 투혼을 불사름(당시 의무팀장은 머리에 간편하게 씌우는 그물붕대를 사용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베테랑의 투지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로 붕대를 사용함 - 하지만 황선홍이 나가있는 중 미국의 메티스에게 실점)
- 전반 막판에는 페널티킥을 얻어냈으나 이을용이 실축함. 이후 후반전에 안정환과 교체
- 당시 미국전이 황선홍의 99번째 A매치였으며, 포르투갈전에 출전하면 센추리 클럽에 가입할 수 있었으나
히딩크 감독은 한 선수의 출장기록이 경기보다 중요할 수 없다는 판단에 포르투갈전에 출전시키지 않음
(황선홍은 2002 월드컵을 끝으로 은퇴한다 밝혔으므로 포르투갈전이 잘못됐을 경우 센추리클럽에 가입 못했을 수도
있었음)
- 16강전인 이탈리아전에서는 후반 1: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 교체 투입되었고 설기현의 극적인 동점골에 기여
- 연장전에서는 부폰을 상대로 프리킥에서 수비벽 밑으로 깔아차는 슛을 날리기도 함
- 8강전인 스페인전에서는 승부차기 1번키커로 나와서 중앙을 노린 슛을 찼었으며 카시야스 겨드랑이 사이로 골이
들어감
- 4강전인 독일전에 선발로 출장했으나 큰 활약을 못보여주었으며 후반 초반 교체로 아웃
8) 2002년 11월 20일 브라질전(친선경기)
- 홍명보와 함께 은퇴경기로 출전
# Award
-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득점왕
- 아시아축구연맹(AFC) 득점왕 : 1994, 1995
- 아시아축구연맹(AFC) 특별상 : 1995
- 한국프로축구 브론즈슈 : 1995
- 한국프로축구 골든볼 : 1995
- K리그 베스트11 : 1995
- J리그 득점왕 : 1999
- J리그 베스트11 : 1999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브론즈슈(득점3위) : 2001
- 체육훈장 맹호장 : 2002
-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 2002
- 자랑스런 충남인상 체육발전분야 : 2002
# ETC...
- 현재는 K리그 클럽들의 감독을 역임하고 있다.
- 2006년에는 현역 프로 지도자로서는 첫 월드컵 해설자이기도 했다.
- 2000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국내 무대 복귀하였으나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으며,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에서 같은 팀이었던 데니스와 일명 '드잡이질'을 한 끝에 맞트레이드되어
J리그 가시와 레이솔로 임대를 가게 되었다
※ 드잡이질 : 경기 중 황선홍이 어깨 탈골 부상을 당했는데 부상정도를 자세히 모르는 데니스가
황선홍을 건드렸고 황선홍이 데니스의 멱살을 잡은 사건, 걱정했던 데니스는 황선홍이
멱살을 잡혀 화를 냈으며 이 사건이 황선홍이 J리그로 임대가게된 계기가 됨
- 딸 황현진은 가수로 걸그룹 예아로 데뷔하였으나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고 계약을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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