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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Issue] 김원웅 前 광복회장 78세 별세 이력 정계 활동 프로필

Zenosara 발행일 : 20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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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 전 광복회장이 30일 암 투병 중 향년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前 광복회장 김원웅 별세

 

김 전 회장은 백범 김구의 중매로 부분의 연을 맺은 조선의열단 김근수 지사와 여성광복군 전월선 여사의 장남으로 1944년 중국 충칭에서 태어나 서울대 재학 중 박정희 정부의 한일회담 반대 투쟁을 주도한 혐의로 투옥되었으며, 1972년 공화당 사무처 공채로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1992년 민주당 소속으로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2000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제16대 재선에 성공,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3선의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3차례 당선 모두 지역구는 대전 대덕이었지만, 민정당·꼬마 민주당·한나라당·개혁당·열린우리당 등 여러 당적을 거쳤습니다.

김원웅

 

2009년 정계 은퇴 이후 2019년 광복회장으로 당선돼 친일청산 등을 주도했습니다. 광복회장 재임 중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게 독립운동가인 '최재형 상'을 시상하고 이승만·박근혜 정부를 '친일 정권'으로 규정하는 등 당시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 그리고 보수단체들로부터 집중적인 견제로 여러 구설과 비리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김 전 회장은 광복회가 국회에 운영하는 카페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 등에 휩싸여 '부끄럽고 민망하다'는 입장을 남기고 올해 초 회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원래 임기는 2023년 5월까지였습니다. 국가보훈처의 광복회 특정감사에서 8억 원대 비리가 추가로 드러나 지난 8월 검찰에 고발되기도 했습니다. 그 후 암투병을 하다 30일 오후 경기도 용인의 한 요양원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김원웅

 

유족으로 아내 진옥선 가천대 명예교수 등이 있습니다. 발인은 11월 1일이며 유족은 “고인의 뜻에 따라 빈소 없이 가족장으로 치르며 조문과 조화는 사양한다”고 밝혔습니다. 고인은 생전 운영하던 강원 인제 약초학교에 안장될 예정입니다.

 

 

 

정계 입문후 다양한 활동

정계에 오래 있었던 만큼 지나온 길과 활동도 다양했습니다.

 

국회에서 윤리특별위원장과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을 지냈고,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국민학교→초등학교' 명칭 개정, '일제강제동원 진상규명 및 보상법' 등 왕성한 의정활동에 전념했습니다. 2000∼2017년 단재 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회장, 2011∼2017년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회장 등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2006~2008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을 지내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참여해 개성공단 제품도 한미FTA 혜택을 받도록 기여했습니다.

김원웅

 

특히 친일청산에 큰 기여를 하기 위해 애썼는데, “안익태유족 애국가 소송, 새로운 국가제정 앞당겨지는 계기되길 바란다”며, ”광복절 기념사를 통해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한 충정’으로 친일청산 문제“를 촉발시켜 공론화했습니다. 그리고 "나라 사랑 국가 공모"를 추진하며 "현재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친일 및 반민족 인사 69명의 묘를 이장"하는 것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그밖에도 일제잔재청산의원모임 대표(1992~1996), 독립운동가 예우에 관한 법 개정(1994), 생존 애국지사 예우금 예산 확보(1993), 민화협 공동의장(2003), 친일인명사전 예산지원(2003), 제주 남북민족평화축전 조직위원장(2003),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제정(2005), 친일반민족행위자 국립묘지 안장 금지를 위한 상훈법 개정안 제출(2007), 무국적 순국선열의 국적회복을 위한 국적법 개정 추진(2007) 등의 많은 역할을 해왔습니다.

김원웅

 

그는 4.15 총선 국회의원 후보들에게 ‘친일찬양금지법’ 제정과 국립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파 이장 등을 여론 조사했으며,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 말한 친일학자, 류석춘 연대교수 파면을 촉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제강제징용 대법원 배상판결 정당하다“며, ”일본의 경제 제재에 맞서 일본제품 불매운동 동참' 결의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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